*
7년 전
301호로 이사 온 영진(30)과
계단에 마냥 앉아 있는
고은호(8)
"아줌마 여기 살꺼에요? 나는 201호에 엄마랑 살아요.
아줌만 누구랑 살아요?"
"혼자"
혼자 이삿짐을 옮기는 영진에게
혼자니까 도와주고 싶다는 다정한 은호
따뜻하지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,
먼저 다가가지도 않는 편인 영진은
그냥 지나친다.
*
201호에 산다면서
집에 가지 않고 종일 계단에만 있던 은호는
밑에 사는게 진짜냐는 영진의 말에 결국 돌아가지만
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는 것 같지 않다.
*
그날 밤
아랫집에서 큰 소란이 나 뛰쳐내려간 영진에게
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어준 은호
은호의 엄마는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었고
은호는 문을 열어주긴 했지만
이내 도망가라고 하고,
차영진은 괜찮으니까 내 뒤에 있으라한다.
*
"형사소송법 212조에 의거 폭행현행범으로 영장 없이 체포합니다"
"니가 뭔데 날 체포해?"
"현행범을 발견하면 그 누구라도 체포할 수 있습니다."
술에 취한 남자의 위협을 가볍게 피하고 수갑을 채우며
"이렇게 나와주면 고맙지"
"집무집행법 3조 2항에 의거 공무집행 방해 추가합니다.
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, 묵비권, 불리한 진술 거부할 수 있습니다."
*
오랜만에 집에 온 영진은
어김없이 집 밖에 혼자 나와있는 은호를 만나고
"엄마가 또 놀다 오랬어?"
"아줌마 기다렸어요"
"내가 언제 올 줄 알고?"
"그래서 매일매일 기다렸어요."
"아줌마는.. 내 영웅이에요."
*
밖에 혼자 방치돼있는 은호에게
영진은 자신의 집에서 쉴 수 있게 해주고
대신 자신의 식물을 돌봐달라는 부탁을 한다.
"일주일에 두번씩 뿌리까지 흠뻑 젖을 정도로 주면 돼"
"나 때문에 죽으면 어떡해요?"
"괜찮아, 넌 아직 어린애니까.
실수를 해도, 잘못을 해도 아직은 괜찮아"
*
"고마워"
그렇게 7년이 지났고
서로 친구가 된 차영진과 고은호
*
같은 날 저녁, 은호는 뜬금없이 영진에게
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영진이 몰랐으면 좋겠다고 한다.
17년 동안이나 성흔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는,
하나뿐인 친구를 죽인 범인을 쫓는,
오래도록 힘든 기억 속에 사는
영진을 걱정했다.
"나 생각해주는 건 고마운데 은호야,
너한테 무슨일이 생긴다면 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.
진급한다는 거 말 안 했는데도 너 알았잖아."
*
아저씨 집에서 자고 온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은호
안쓰러워하는 영진에게
자신이 이제 애도 아니고 괜찮다고 한다.
"너 아직 애야"
"빨리 어른이 되면 좋겠다"
*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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