*
차영진과 고은호의 언젠가
은호는 평소처럼 하교 후 영진의 화분에 물을 주러왔다.
"왜 있어요?"
"..내 집이야"
차영진의 목소리엔 힘이 없고
은호는 식탁 위 약봉투를 발견했다.
"어디가 아픈데요?"
"몸살.."
"잘 됐다."
"...뭐?"
"그 덕에 쉬잖아요. 몸살은
쉬고싶다고 몸이 신호를 보내는 거에요."
"밥은요?"
"죽 사다놨어. 신경 쓰지마."
7년 전 영진은 어린 은호에게 자기 대신 화분에 물을 주라는 부탁을 했다.
달랑 하나였던 화분이 이제는 베란다를 가득 채웠다.
은호는 일부러 일어서서 햇빛을 바라보다가
재채기를 한다.
"너 또.. 해 일부러 봤지?"
"나 재채기하는 간격이 길어지고 있어요.
이거 극복할 수 있을거 같아요."
"눈 나빠진다니까.. 좀 불편할 뿐이잖아. "
"어두운 데서 밝은데로 나갈 때마다
재채기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는거 짜증나요."
"....."
"왜요?"
"너 요즘 짜증난다는 말 자주 한다?.. 무슨 일 있어?"
"....나 중2 잖아요..
자요.. 책만 놓고 갈꺼에요"
*
몸살 기운에 약을 먹고 잠이 들었던 차영진
다정한 은호는 영진에게
담요를 덮어주고 갔다.
차영진은 몸을 일으켜
잠들기 전 은호가 책을 꽂아두고 갔던 자리로 가본다.
영진은 은호에게 부탁을 하나 더 했다.
자기 집에 있는 책을 읽고 내용을 알려달라고.
은호가 읽은 책을 꺼내보는데
제일 뒷장에 글이 적혀있다.
'읽는 내내 졸렸어요'
'범인을 알아내기 위해 엄청 머리를 굴렸는데, 대실패'
'내 몸을 자라게 한 건 엄마
내 영혼을 자라게 한 건...'
15살의 은호는 영진의 부탁들이 자신의 위해서였음을 잘 알고 있다.
*
은호는 영진이 승진한 날 같이 저녁을 먹으며
자신에게 나쁜 일이 생기면 영진이 몰랐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.
그리고 은호는 사고를 당하기 전날 영진을 찾아와 선행상을 받았다고 했지만
영진은 성흔연쇄살인 사건에 몰두하느라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.
은호의 가방 속 영진의 책 마지막장에 은호의 글이 적혀있다.
'말할 수 없어요. 하지만... 그래도 도와줘요.'
차영진은 최근 은호가 평소같지 않다고 느꼈다.
하지만 더 묻지 않았다.
복잡한 감정을 억누르고 사체를 살핀다.
강력1팀에 케빈정의 사체를 발견했음을 알리고 감식반을 불렀다.
모두 사건현장에 모였다.
사인을 알기 위해 영진은 확인할 게 있다.
"케빈정 몸에 치명상이 없어요."
"그럼 필로폰에 의한 중독사?"
"그리고.. 헤로인, 코 주변에 흰 가루가 묻어있었어요."
"집 안엔 강제로 침입한 흔적도 없고, 케빈정이 집 안에서 반항한 흔적이 없어."
"그런데 케빈정의 손에 결박된 흔적이 있다는 건..."
"이 죽음에.. 누군가가 개입한 거야."
*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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